2014년 한국 사운드트랙 베스트 5. 퀵리뷰

2014년은 다른 어느 해보다 여름 시즌의 100억대 대작 라인업이 분명한 해였다. 무엇보다도 CJ, 쇼박스, 롯데, NEW라는 빅4의 본격적인 시즌 매치가 벌어졌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과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기쁘게도 이 작품들의 영화음악은 모두 발매되었고, 국내외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수준 높은 아티스트들과의 협연을 통해 레코딩되었다. 다만 그게 내적인 성장이나 성과를 불러 온 건지는 잘 모르겠다. 존재감이 뚜렷했던 이들 작품 외에 여전히 다른 작품들은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고, 대중과의 접점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쉽게 잊혀 간다. 과거 영화사가 (마케팅을 빌미로) OST 발매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오로지 작곡가들만의 부담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과연 영화음악의 상업적인 발매가 의미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회의감은 비단 음악가들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97년 [접속]의 성공 이후 가까스로 창출된 시장의 축소 혹은 무관심이 또 다른 단절과 손실을 가져오지 않을까, 국내 사운드트랙이 영화음악가의 포트폴리오나 아카이브 측면에서만 다뤄지게 될까봐 두렵다.

2014년에 개봉된 한국영화는 대략 150여편. 그 중 사운드트랙이 공개된 건 30편 내외다. CD로 발매된 게 13편이 채 안되고, 디지털 음원까지 포함된 수가 이 정도다. 작년 한해 국내에선 총 제작편수 1/5 수준의 영화음악만 접할 수 있던 셈이다. 그 중 독립영화들도 간간이 눈에 띄는 걸로 봐서 단순히 경제적인 시장 문제만을 탓할 건 아닌 거 같고, 제작사와 저작권 그리고 기타 제반 사항이나 작곡가의 의지 및 여러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어른들만의 문제” 때문이 큰 탓이라. 어쩔 수 없다. 할리우드에서도 모든 영화음악이 공개되는 건 아니니까. 일단 이들을 대상으로 5편을 추려 2014년 한국 사운드트랙 베스트를 뽑아보았다. 사운드트랙이 나오지 않은 작품들은 과감히 후보에서 제외했다. 그 편이 이 리스트에 대한 형평성과 객관화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음악 베스트가 아닌 사운드트랙 베스트다. 따라 호평을 받았지만 김태성의 [한공주]나 장영규의 [도희야], 정용진의 [자유의 언덕] 등과 같은 작품들은 사운드트랙이 나오지 않았기에 애초부터 대상이 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개인적으로도 아쉽게 생각한다. 

발매된 사운드트랙 후보작들은 맨 뒤에 첨부한다. 리스트는 무순이다.

1. 군도: 민란의 시대 (CD | 디지털음원)
by 조영욱, 홍대성, 정현수

여름 빅4 중 가장 기대치가 높았고, 그래서 가장 먼저 개봉되었던 작품이지만, 윤종빈 감독의 이 조선 버전의 웨스턴은 비평적으로나 흥행적으로 다소 떨떠름한 성적표를 받아드려야 했다. 흥행분기점을 넘겼으니 딱히 망했다 볼 수 없고, 평단도 그럭저럭 호의적이었으니 선방한 것으로 보여야 하는데, 하정우 강동원이라는 막강 투 탑에 이경영, 조진웅, 이성민, 마동석, 김성균, 정만식 등 화려한 조연진을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나마 위안거리가 있다면 바로 조영욱 음악감독과 작곡을 맡은 홍대성 & 정현수의 영화음악이다. 굳이 Riz Ortolani의 [황야의 분노 I Giorni Dell'ira]의 메인 테마를 사용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의구심과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게다가 바로 전 타란티노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 Django Unchained]에서 이 곡이 쓰였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더욱 더!), 이를 감안하더라도 전체적으로 과도하게 깔리는 오버 스코어링의 묘미는 영화음악이 주는 본령과 쾌감에 가장 충실한 편이었다. 2장의 CD에 100분이 넘는 분량도 분량이지만, 과거 마카로니 웨스턴에서 흐르던 기타와 만돌린, 하모니카와 팬 플루트, 여성 허밍 등 전형성을 구현해낸 사운드와 스타일이 인상적이다. 6-70년대 일본 임협 영화나 같은 시기 만주 웨스턴에서도 끊임없이 모방되고 재활용되었던 장르적 특성으로서 음악이 주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에, 이런 스타일이 영화에 미친 힘은 지대했다고 본다. 사극이라는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서정과 낭만, 활력을 담아낸 빈티지스러우면서도 큰 스케일의 스코어는 영화가 놓쳐버린 균형과 흐름을 그나마 조율하는데 미력한 역할을 해냈다.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지만 그럼에도 미덕이 더 높았던 스코어.

2. 해무 (디지털음원)
by 정재일, 김용

박유천에게 신인상 그랜드슬램이란 영광을 안겨주었지만, 봉준호 감독에겐 제작자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싹 지우게 만든 영화 [해무]. 그만큼 여름 시즌에 가장 타격을 입은 작품이었다. 어둡고 잔인한 내용으로 인해 19금 판정을 받아 [군도]나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명량]에 비해 연령에 대한 혜택을 받지 못했으며, 이 세 작품과 다르게 유일한 신인감독의 데뷔작이란 점도 감안해야 할 듯 싶다. 경쟁작들이 조영욱, 황상준, 김태성이라는 베테랑 영화음악가들을 배치한 반면, [해무]는 이번이 세 번째 장편 영화작업인 - 상업영화라곤 [마린 보이]가 전부인 정재일을 택했다. 의외의 결정이지만 납득 못 할 선택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대중음악계에서 정상급의 세션맨으로 이름을 떨쳤고, 프로듀서이자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연극, 전시, 공연 등 각종 문화계 전방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에. 그런 의미에서 앞선 세 작품이 대작 상업영화라는 본령에 충실히 제작된 스코어라면, [해무]는 조금 다른 지점에 위치해 있다. 대중적인 화법과 거대하고 웅장한 스케일, 화려한 물량공세로 관객들을 압도하기보단 대작이라는 굴레에 갇히지 않고 음악가 자신만의 색채를 고스란히 투영시킨 묵직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과 끝을 담당한 ‘출항’과 ‘만선’을 제외하고 모두 시간으로 표기된 트랙명도 독특하지만, 이들 트랙에선 주된 테마는 거세된 채 시종일관 거대한 파도에 휩쓸 것 같은 두려움과 차가움이 읽힌다. 섬세하면서도 고즈넉한 스트링이 금속성 잔향들과 부딪쳐 투명한 파장을 남기고 이는 뾰쪽한 날이 되어 불안함을 가중시킨다. 긴장과 폭력, 광기를 잔뜩 머금은 채 전진호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나가는 그의 선율은 물론 선행된 ‘출항’의 서정적인 테마가 전재했기에 가능했다. 슬픈 운명을 암시라도 하듯 서두에 애잔하게 깔리는 이 음악은 명징하게 남아 엔딩으로 향할 때까지 지독한 어둠 속에서도 버틸 수 있게 만든다. 영화음악가 정재일이란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스코어. 

3. 관능의 법칙 (디지털음원)
by 박인영

엄정화와 권칠인 감독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더라도 영화 [관능의 법칙]은 2000년대 초반에 개봉한 [싱글즈]의 후일담, 혹은 40대 버전을 떠올리게 만든다. 세 여자들 간의 우정과 사랑을 기둥 삼아 결혼 생활과 섹스, 자식 문제와 건강 등 일상사를 소소하게 풀어낸 섬세한 연출과 편안한 연기는 [싱글즈]와 마찬가지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세태를 담고 있기에 유행에 민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칫 촌스러워질 수 있는 한계와 제약들을 박인영의 상큼한 라운지 계열의 음악들로 무마시켰다. 영화가 가진 통속성이나 가벼운 유머, 상투적인 감동 코드들을 지긋이 눌러주는 그녀의 고급스러우면서도 대중적인 컨템포러리 계열의 스코어는 익히 이런 류의 영화들에서 들리는 매너리즘과 컨벤션을 벗어나 영화에 고유한 활력을 부여했다. 뉴욕대 영화음악이라는 전공을 넘어 익히 오래전부터 대중음악계에서 스트링 편곡으로 맹위를 떨친 그녀의 이력은 대중적인 화법과 호응을 손쉽게 이뤄냈을 뿐만 아니라 완성도 높은 사운드를 선사한다. 탱고와 살사, 보사노바 등 라틴 사운드를 기반으로 때론 흥겹게, 때론 감미로우며, 때론 우울한 정서를 풍부하게 담아내는 음악들은 이전 김기덕 감독과 함께 했던 [풍산개]나 [피에타], [뫼비우스] 때보다 더 잘 맞는 옷을 입은 듯 하다. 기타와 반도네온, 색소폰, 브라스, 휫슬은 물론 그녀의 특기인 섬세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스트링의 활용은 다채로우면서도 재기발랄한 사운드를 들려주며 영화에 생동감 넘치는 리듬감을 입힌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통일성을 잃지 않고 조율해가는 솜씨가 속된 말로 끝내준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깜짝 놀랐던 올해의 발견에 해당하는 스코어. 다른 (국내외) 영화에서도 얼른 그녀의 이름을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4. 카트 (CD | 디지털음원)
by 이지수

비교적 쉽게 골랐던 위의 세 사운드트랙과 달리 나머지 두 자리를 놓고는 조금 고민해야 했다. 임팩트나 활용도 면에서 앞선 작품들보다 더 세게 다가오지 않았고(사실 2014년 한국 사운드트랙 전체가 그런 느낌이었지만), 남은 후보작들끼리도 고만고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목영진의 [끝까지 간다]는 전형적인 장르물 스코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기능적인 역할에만 머물렀고, 김태성의 [명량]은 임진왜란과 동시대 클래식에서 모티브를 얻어 진행한 시도는 좋았으나 독자적인 매력이나 인상이 흐릿했다. 국악과 크로스오버를 꾀한 황상준의 [해적:바다로 간 산적]은 퓨전적인 색채는 독특했으나 할리우드에서도 이제는 지겹다는 반응의 리모트 컨트롤 프로덕션 사운드와 유사한 스타일이 식상하게 느껴졌다. 장고 끝에 선택한 건 정공법적인 드라마 스코어로 승부를 본 이지수의 [카트]였다. 이 풍성한 캐릭터 앙상블 영화에서 음악이 주된 감정을 부여하고 적극적으로 극을 이끌어나갈 공간이 적기에 스코어는 살짝 뒤로 빠져 에피소드에서 놓치는 부분들의 디테일한 감정선들을 이어가는 데 충실한 편이다. 다만 그가 워낙에 멜로디라인이 도드라지는 작곡가이고, 극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구사하는 편이라 큐가 짧고 적은 편임에도 존재감이 뚜렷이 남는다. 서정적인 피아노와 섬세한 기타를 메인으로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불가리아 소피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이 억장이 무너지는 영화에 격정적인 동조를 구한다. 아이돌 그룹 EXO의 멤버이자 영화에 출연한 디오(도경수)가 직접 부르는 엔딩곡인 ‘외침’은 담백한 보이스에 담긴 잔잔한 멜로디가 진하게 잔상을 남기며, 이 선율을 변주해 테마로 거듭 활용한 방식은 고전적이지만 아주 효과적이다. 흠이 있다면 30분이 안 되는 짧은 분량과 상업적인 의도가 다분히 드러나는 디오의 사운드트랙 전면 커버다. (여기에 올린 건 CD 케이지의 내지이자 디지털 음원의 커버다.)

5. 셔틀콕 (디지털음원)
by 김해원

남은 한자리는 김해원의 [셔틀콕]에 손을 들어준다. 경합(?)을 벌인 건 위에서 밝힌 작품들 외에 강민국의 [경주]와 미누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도 있었다. 둘 다 음악적으론 나쁘지 않았다. 나른하면서도 낭만적인 풍취를 가진 [경주]와 동화적이며 목가적인 감동을 주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모두 아름다운 선율을 가지고 있다. 다만 홍상수 영화에서 정용진이 담당한 음악이 큰 영향력을 남기지 못하듯, [경주]에서 강민국의 음악은 너무 짧고 반복적이며 제한적으로 사용돼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그럼에도 장률 감독이 홍상수 감독보다 음악적 활용이 낫다는 건 알 수 있었다.) 400만을 넘겨 인디영화 사상 최고 흥행작이 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단출한 구성과 예산적인 한계가 아쉽게 다가왔다. [셔틀콕] 역시 인디 영화의 한계와 제약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감동을 배가시키는 역할이 아닌 성장통을 겪고 있는 십대의 은밀하면서도 섬세한 심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김해원의 이 작은 DIY(작곡, 편곡, 연주, 녹음을 모두 혼자 진행했다.) 스코어는 찬란하면서도 쿨하다. [군도]나 [명량], [해적]처럼 거대한 스케일을 전달하지도, [카트]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처럼 진한 감동을 선사하지도, [언더 더 스킨]의 미카 레비처럼 전위적인 사운드를 구사하지도 않지만, [셔틀콕]은 청춘물과 로드무비의 전형을 간직하면서 깨질 듯, 어디론가 훌쩍 날아갈 듯, 반짝이며 산들거리는 그 시절의 내면을 잘 표현했다. 영롱한 일렉 기타와 시리도록 차가운 첼레스타, 이를 감싸는 어쿠스틱 기타가 만나 소소하면서 담백하게 여정을 그려나가는 그녀의 음악은 그들의 여정을 더욱 특별하게 보살핀다. 빈 듯 여운이 길게 남는 스코어다. 역시나 9트랙에 30분이 채 안 되는 분량은 아쉽다.
 

덧) 결국 해를 넘겨버렸다. 작년 말에 마무리해서 올리려고 했는데, 고르고 또 고르는데 길어지고 말았다. 서양 사운드트랙 베스트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기 전쯤엔 올리고 싶은데, 그게 가능할런지 모르겠다.

[타짜-신의 손] 속지에 위의 문구가 실려있어 울컥했다. 다시 한번 OST-BOX의 故 김관희 님의 명복을 빈다. 



부록) 2014년 한국 사운드트랙 후보작 리스트

1. 변호인 by 조영욱 (CD | 디지털음원)
2. 용의자 by 김준성 (CD | 디지털음원)
3. 플랜맨 by 김준석 (CD | 디지털음원)
4. 남자가 사랑할 때 by 황상준 (CD | 디지털음원)
5. 수상한 그녀 by 모그 (디지털음원)
6. 피 끓는 청춘 by 심현정 (디지털음원)
7. 또 하나의 약속 by 연리목 (CD | 디지털음원)
8. 관능의 법칙 by 박인영 (디지털음원)
9. 레바논 감정 by 정교임 (디지털음원)
10. 셔틀콕 by 김해원 (디지털음원)
11. 일대일 by 박영민 (디지털음원)
12. 끝까지 간다 by 목영진 (디지털음원)
13. 우는 남자 by 최용락 (디지털음원)
14. 군도: 민란의 시대 by 조영욱 (CD | 디지털음원)
15. 명량 by 김태성 (CD | 디지털음원)
16. 해적: 바다로 간 산적 by 황상준 (CD | 디지털음원)
17. 해무 by  정재일 (디지털음원)
18. 터널 3D by 한재권 (디지털음원)
19. 타짜- 신의 손 by 김준석 (CD | 디지털음원)
20. 나의 사랑 나의 신부 by 김준성 (디지털음원)
21. 맨홀 by 황상준 & 마상우 (디지털음원)
22. 나의 독재자 by 이진희 & 김홍집 (디지털음원)
23. 카트 by 이지수 (CD | 디지털음원)
24. 봄 by 박기헌 (디지털음원)
25.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by 미누 (CD | 디지털음원)
26. 덕수리 오형제 by 황상준 (디지털음원)
27. 캐치미 by 정교임 (디지털음원)
28. 위층여자 by 오승련 (디지털음원)
29. 약혼 by 권혜진 (디지털음원)
30. 스케치 by 마르코 (디지털음원)
31. 제 3성전 by 조셉킴 &김명종 (디지털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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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5/01/12 20:4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1/12 23:3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Hardcore Holly 2015/01/18 22:39 # 답글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제가 그저께 군도 OST음반을 이제야 샀습니다.
    조영욱 음악감독님의 작품이라서^^
  • 박력남 2015/01/21 06:23 #

    넵. 오랜만에 뵙네요. ^^
    군도 OST는 최근 Movie Music UK에서 뽑은 2014년 액션/어드벤쳐/스릴러 음악에도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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