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호너를 추모하며. 영화음악가


지난 6월 23일(현지 시각으로 22일) 제임스 호너 James Horner가 타계했다. 향년 61세. 급작스런 비보였다. 사인은 경비행기 추락사. 자신이 직접 소유하던 비행기에서 조종사와 함께 사망했다. 멀게는 리치 발렌스 Ritchie Valens나 존 덴버 John Denver, 가깝게는 해리슨 포드 Harrison Ford가 떠오르는 사고였다. 그는 지난 4월에 공개된 비행기 관련 다큐멘터리 [Living in the Age of Airplanes]의 음악을 담당한 바 있고, 2012년엔 라이트 형제의 얘기를 담은 [First in Flight]라는 단편을, 2010년엔 무스탕 에어쇼 팀 The Flying Horsemen을 위한 음악을 작업한 바 있을 정도로 비행기에 대한 애정을 피력해왔다. 2005년의 [플라이트 플랜 Filght Plan]이나 1987년 [X전략 Project X]과 같은 비행 관련 영화는 물론, [아바타 Avatar]나 [아폴로 13 Apollo 13], [인간 로케티어 The Rocketeer] 그리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The Amazing Spider-man]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운 활강과 비상에 대한 그의 경이로운 멜로디와 분위기는 단순한 영감에 의한 것이 아닌 뜨거운 열정과 부단한 취향에서 느껴진 잔향 덕분이었을 것이다.

올해는 지난 2년간의 공백기를 지나 다시 활발한 활동을 예고하고 있던 터라 안타까움이 더하다. 제임스 호너는 2012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끝으로 의도치 않게 휴지기를 가졌다. 2013년 레코딩까지 마치고 사운드트랙 출시까지 알렸던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 Juliet]은 제작자와 모니터 시사회 반응에 대한 견해 차이로 그의 스코어가 쓰이지 못했고, 같은 해 개봉된 [엔더스 게임 Ender's Game]은 음악으로 내정되었으나 프로덕션이 시작되며 스티브 자브론스키 Steve Jablonsky로 교체되고 말았다. 2014년 개봉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The Amazing Spider-Man 2]는 전편에 비해 ‘끔찍한’ 결과물이었기에 호너 스스로 자진 하차를 결정했다. 대신 그는 이 기간 동안 노르웨이 태생의 남매 연주자 Mari와 Håkon Samuelsen과 함께 더블 콘체르토 ‘PAS DE DEUX’를 완성해 올 초 앨범으로 발매했으며, 타이타닉 라이브를 비롯해 다양한 콘서트 활동에 주력했다. 그의 8-90년대 사운드트랙들도 다시 재조명을 받으며 복각되는 상황이었다. 그의 스크린 복귀작은 지난 4월 장 자크 아노 Jean-Jacques Annaud 감독과 4번째로 호흡을 맞춘 [늑대 토템 Wolf Totem]이었고, 7월말에는 안톤 후쿠아 Antoine Fuqua 감독의 복싱 영화 [사우스포 Southpaw]가 개봉 예정이고(사고 바로 전날 사운드트랙에 대한 정보가 공개돼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11월에는 칠레 광부들의 매몰 구출 실화를 다룬 [The 33]의 음악으로도 내정돼 있었다. (사고의 무대였던 칠레에서 8월에 개봉이 잡혀있는 걸로 봐서 아마도 작업은 마무리된 것으로 보여 진다. 이 작품이 그의 유작이 될 듯.) 무엇보다 2017년과 2018년 순차적으로 개봉될 [아바타] 시퀄들에 대해 여러 인터뷰들을 통해 기대감을 높이던 상황이었는데, 이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해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의 타계는 여러모로 많은 영화음악팬들과 영화팬들은 물론, 동료 작곡가에게도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한스 짐머 Hans Zimmer는 “What a sad day for all of us. A great composer gone - and with him the world will be a little less beautiful, less soulful. We lost an artist that everyday created music that touched our hearts and souls, invented memories for us to share and who's music brought us closer together. James, we miss you.”라고 SNS에 밝혔고, 브라이언 타일러 Brian Tyler 역시 “So saddened by the loss of James Horner, an incredible inspiration and a brilliant composer. I just can't believe it.”라고 트위터에 애도를 표했다. 그와 단 세 작품만 했지만 그 누구보다 많은 사연을 가진 제임스 카메론 James Cameron은 할리우드 리포트지에 그에 대한 짧은 헌사를 남겼고, 역시 같이 작업했던 론 하워드나 알란 멘켄, 폴 윌리엄스 등과 같은 동료 뮤지션들도 깊은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했다. 전 세계 영화음악 관련 사이트들과 블로그에서도 꾸준히 애도하는 글과 추모 특집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왕립음악 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70년대 UCLA에서 영화음악을 가르치던 그는 종종 미국영화협회의 의뢰를 받아 독립영화들의 음악을 작곡하며 실전 경험을 쌓았다. 80년대 초까지 다양한 저예산 영화들을 섭렵하던 제임스 호너가 주목받게 된 건 로저 코만 Roger Corman이 제작한 두 SF 영화 [심해의 공포 Humanoids from the Deep]와 [우주의 7인 Battle Beyond The Stars] 덕분이었다. 이 두 작품에서 호너는 당시 유행하던 영화음악의 두 흐름 - 조지오 모로더 Giorgio Moroder와 반젤리스 Vangelis로 상징되던 ‘전자음악’과 존 윌리엄스 John Williams와 제리 골드스미스 Jerry Goldsmith로 대표되던 ‘대규모 관현악 사운드’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할리우드의 눈도장을 받게 된다. 저예산의 한계인 규모와 얄팍한 시나리오의 정서를 보완해주는 그의 사운드의 위력을 인정한 것이다. 대규모 SF 프랜차이즈 속편 [스타 트렉 2: 칸의 분노 Star Trek II: The Wrath Of Khan]와 월터 힐 Walter Hill 감독의 액션 코미디 [48시간 48 Hrs.]이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메이저 발판에 올라선 그는 타계하기 전까지 150여편에 이르는 작품들을 책임지며 당대 최고 영화음악가로 활동했다. 아카데미에 10번 올라 2번 수상. 골든 글로브 역시 10번 올라 2번 수상. 그래미는 11번 올라 5번을 수상한 그는 지금껏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오케스트럴 사운드트랙 기록을 가진 작곡가이고(그의 [타이타닉 Titanic] 사운드트랙은 지금껏 3천만장이 팔렸다), 알프레드 뉴먼과 막스 슈타이너,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드 등의 1세대와 존 윌리엄스, 제리 골드스미스, 앨머 번슈타인 등으로 대표되는 2세대 할리우드 작곡가의 뒤를 이어 3세대 심포닉 영화음악가의 대표주자로 손꼽혀 왔다.



제임스 호너의 전성기 대표작들을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영화관에서 맞이하던 기억이 생생한 터라 그의 죽음이 유난히 가깝게 느껴지는데, 처음 그의 선율을 듣고 매료되었던 건 스필버그 제작의 애니메이션 [피블의 모험 An American Tail]에서였다. 이 작품의 주제곡이자 따로 떨어진 두 남매가 서로 그리워하며 잠자리에 들기 전에 부르던 ‘Somewhere Out There’은 감미로운 스탠다드 팝이자 메인 테마 격인 선율로 호너의 탁월한 멜로디 감각과 서정성을 만천하에 알린 곡이었다. 8-90년대 라디오 영화음악실에서 단골로 리퀘스트되던 레파토리 중 하나였는데 생애 처음으로 가수보다 작곡가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던 노래이기도 했다. 린다 론스타드 Linda Ronstadt와 제임스 잉그램 James Ingram 뒤로 떡 하니 존재감을 드러낸 그들의 정체가 바로 호너와 작사가 윌 제닝스 Will Jennings 콤비였다. 그 길로 당장에 동네 수입 레코드 가게로 달려가 몇 달 동안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제임스 호너의 영화음악 CD를 처음 구입했는데, 아쉽게도 그토록 원하던 [피블의 모험]은 아니었고 소량의 신상 수입품이라 어마어마하게 비쌌던 [윌로우 Willow]의 사운드트랙이었다. 당시 스타워즈 Star Wars 버프를 상당히 받고 있던 조지 루카스 George Lucas가 제작하고 각본을 쓴 판타지라는 걸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는 국내에서 그리 흥행하지 못했는데 음악만큼은 정말 굉장했다. 광활한 스케일과 드라마틱한 서사가 귀로 느껴질 만큼 호쾌한 스코어에 이국적인 켈틱 사운드와 사쿠하치를 도입한 색다른 시도는 기존의 존 윌리엄스나 제리 골드스미스, 존 배리나 모리스 자르 등에게서는 느껴보지 못한 또 다른 차원의 압도적인 감동이었다. 특히나 시원스레 울려 퍼지는 혼과 브라스의 장중한 조합은 판타지 영웅담에 어울리는 희망찬 찬가이자 진군가였고, 그 이면으로 들리는 어둠과 혼돈의 사운드와 10여분이 훌쩍 넘어가는 긴 트랙의 곡들은 가히 문화충격에 가까웠다. 부지런히 그의 영화음악들을 하나 둘 찾아듣게 된 건 바로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의 죽음과 마주하며 하나하나 다시 꺼내 듣는다. 발매된 것만 100여장에 이르는 터라 기나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참에 비어있던 몇몇 그의 앨범들도 주문했다. 혹시나 재발매되지 않을까 싶어 미뤄두고 미뤄뒀던 [잭 더 베어 Jack The Bear]도 그 중 하나다. 2001년 1500장 한정으로 나왔던 희귀 사운드트랙. 이것이 내 나름대로의 추모하는 길인 셈이다. 존 데브니 John Debney가 트위터에 남긴 그에 대한 추모사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더 이상 호너의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사실에 절망하고 슬퍼하는 내 심정을 대변하는 듯 하다. “No words. My sadness is so deep that it is difficult to process. Perhaps God needed someone to help write His music. Godspeed Maes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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